KT 가 공유기를 제한할 수 밖에 없는 이유

Posted at 2007. 7. 31. 14:10 // in IT동향 // by 김윤수


(미리 밝혀 두지만 저는 KT 빠도 아니고 KT 알바도 아닙니다. 그런 빠가 있지도 않을 것 같지만...)

지금 KT 가 공유기를 제한한다는 소식에 블로거들이 이런 저런 쓴 소리를 뱉어내고 있습니다.

어차피 정해진 속도를 일정 금액을 내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므로 공유기 뒤에 몇 대를 물려쓰던 KT 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건 사용자 입장에서는 일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입장에서 보면 KT 의 대응이 십분 이해가 됩니다. (저는 실제 요즘 광랜이라는 서비스를 위한 장비를 개발하던 업체에 근무했었고,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증명해 드릴 순 없습니다만... 글적글적)

KT 가 네트워크를 구성할 때, 통상 모든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네트워크 대역폭의 합만큼을 완벽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가입자가 동시에 초고속 인터넷을 최대 속도로 이용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세명의 사용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사용자는 특정 시점에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고 있고(Full 대역폭의 10%이하), 한 사용자는 웹하드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다운받고 있고(Full 대역폭의 100% 육박), 한 사용자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Full 대역폭의 30% 이하) 얼추 잡아서 전체 Full 용량의 반이하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식으로 확률적으로 사용자들이 항상 최대한의 대역폭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하여 네트워크 용량을 준비해 놓고, 그에 맞추어서 가격 정책도 정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확률은 각 가정당 하나의 PC 만 쓰는 것으로 가정하고 산정된 것인데, 한 가정당 공유기를 통해 여러 PC를 사용하게 될 경우 이 확률이 크게 어긋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용자들에게 약속한 속도를 보장해 주려면 네트워크 용량을 더 확충해야 하고, 이것은 다시 KT 에게 비용부담으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만약 KT 가 초고속인터넷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가격을 올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현재 초고속인터넷시장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이 없을 정도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요즘 초고속인터넷 바꿀 때 여기저기서 주는 보조금을 생각해 보시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공유기를 써서 지속적으로(거의 하루 종일) 과도하게 트래픽을 유발하는 일부 사용자들 때문에 전체 사용자의 요금을 올린다는 것도 말이 안되거니와 요금을 올리면 시장점유율 하락은 눈에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KT 입장에서 요금을 올리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대안은 공유기 사용을 제한하는 것과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한다면 회선 품질이 나빠지더라도 그냥 놔두는 것이지요.

좀 더 합리적인 대안은 회선 품질이 나빠지도록 놔두는 것이 아니라 공유기를 통해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일부 사용자를 제한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회선 품질이 나빠지도록 놔둔다면 사용자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 자명할 뿐만 아니라 시장점유율도 떨어질 것이며, 애꿋은 선의의 사용자가 피해를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공유기 사용 제한에 있어 단순히 사용 PC 대수만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PC 대수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 여부를 적절히 판단하여 제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유기를 사용하는 단순 일반 사용자보다는 기업적으로 공유기를 활용하는 사용자를 잘 막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는 FON Korea 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FON Korea 는 KT 입장에서 보면 초고속인터넷정액제의 약점을 이용하여 KT의 가입자네트워크 Infra 를 거의 무임 승차하다시피 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다른 초고속인터넷사업자들-LG 파워콤, 지역케이블, 하나로텔레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뭇 궁금합니다.

현재 인터넷의 통한 혁명의 기저에는 초고속인터넷 정액제 서비스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들이 아무리 트래픽을 많이 쓰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요금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것은 역으로 비트당 통신 비용(통신 비용의 총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이 거의 제로와 가까와 졌고, 이는 다시 정보의 원활한 유통을 가속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여 네티즌 여러분들도 KT 에 조치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KT 가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공유기 사용제한을 너무 과도하게 한다면 목소리를 크게 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앞으로 실제 시행을 하면서 어떤 수준으로 KT 가 조치를 취하는지를 보면서 반응해야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생태계는 어느 한쪽 편만 이익을 보는 식으로 굴러가면 반드시 삐그덕 거리게 되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초고속인터넷서비스 업체도 어느 정도 자신들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실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쓴 이후로 여러분들과 생각을 교환하면서 제 의견을 수정하게 됐습니다. 이 글을 그냥 수정하면 아래에 댓글 다신 분들의 내용이 이상해질 것 같아, 수정된 의견은 그냥 댓글 안에 두었습니다. 참고하시고 댓글 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KT 의 수정된 약관 중에서 공유기 부분만 따로 정리해서 "공유기 관련 KT 인터넷 서비스 약관 내용" 이라는 글로 정리해 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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